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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치너 가문

@바야기2026. 4. 15. 15:35

H.R. Pfretzschner 바이올린 활은 괜찮은 독일활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특히 베이스에서는 전공자활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뉘른베르거 가문이 프란츠 알버트로 대표되지만 프레치너 가문은 H.R. Pfretzschner 가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프레치너 가문은 악기제작자 가문으로 시작했으나 Carl Richard Pfretzschner(1835년생)이 가문 최초의 활 제작자가 되면서 활제작자 가문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활만을 제작했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5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참고로 악기제작자 명맥은 G.A.Pfretzschner 라는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Hermann Richard Pfretzschner(1857~1921)

헤르만 리하르트 프레츠너(Hermann Richard Pfretzschner)는 1857년 2월 28일 마르크노이키르헨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학교 교육을 마친 후 아버지의 공방에서 활 제작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깊은 기술을 배우길 원했고, 1872년 파리로 건너가 전설적인 제작자 J.B. 비욤(J.B. Vuillaume)의 문하에서 수련했습니다. 마르크노이키르헨으로 돌아온 그는 1880년 자신의 공방을 열었습니다. 뷔욤 공방에서는 아들 우쏭과 함께 미리 일하고 있던 부아랭(F.N. Voirin)의 지도를 받으며 활제작을 하였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탁월한 장인 정신과 세심한 양식 연구를 통해 큰 존경을 받으며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1891년에는 그의 아들인 리하르트 헤르만(Richard Hermann, 1876–1958)을 견습생으로 받아들여 활 제작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1901년에는 작센 왕실 공식 납품업자(Königlich Sächsischer Hoflieferant)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활의 프로그(frog) 부분에 작센 왕실 문장을 불도장으로 새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활대는 H.R.PFRETZCHNER라는 각인과 그당시 다른 독일제작자들 처럼 바니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H.R.PFRETZSCHNER 각인과 프로그의 작센왕실 문장

그는 비욤, 투르트(Tourte), 부아랭(Voirin)의 모델을 따랐으며, 당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중 한 명이었던 아우구스트 빌헬미(August Wilhelmi) 교수와의 협업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받는 전용모델을 제작하였습니다.

 

그사이 둘째 아들 베르톨트 발터(Berthold Walter, 1889–1983)도 성장하여 활 제작에 합류했습니다. 1911년 3월 27일에는 작센-바이마르 대공으로부터 "작센-바이마르 대공국 왕실 납품업자" 칭호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드레스덴의 고객들을 위해 전용 아틀리에(Atelier)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두 아들이 전장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는 다시 혼자서 활 제작을 전담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악화되어 있던 건강이 다시 크게 상하게 되었고,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192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

그에게는 빌헬름 아우구스트(Wilhelm August; 1871~1939)이라는 첫째 아들이 있었고 따로 공방을 차려 W.A.Pfretzschner 각인을 가진 다양한 품질의 활을 제작하였다.

 

앞에 언급된 그의 다른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공방을 어어받아 그의 아버지의 각인의 활을 생산을 하였습다.

 

그 후 세대인 테오도르 헤르만과 호르스트 리하르트 역시 활 제작 기술을 배워 가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이후 동독(GDR)의 정치 체제 때문에 당시 공방 소유주였던 호르스트 리하르트는 1966년 개인 사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공방은 국영화되어 "PGH Sinfonia"에 합병되었고, 1985년에는 "VEB Musima"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가문의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아들 하인츠 프레츠너는 국영 기업에서 활 제작을 계속했고, 동생 헤르만 리하르트는 독일 통일 전 동독을 떠나 바이에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독일 통일 후 하인츠 프레츠너와 그의 아들 르네 하인츠(René Heinz)은 H. Pfretzschner Markneukirche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H.R. Pfretzschner 상표권

여기서 후계자가 전통의 이름인 H.R. Pfretzschner란 이름을 쓰지 않는가와 지금도 그 이름의 활이 제작되고 있던데란 의문이 들겁니다. 가문의 적통인 하인츠는 오랫동안 가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기에 서독으로 이주한 동생이 공방이름의 사용권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2010년에야 상표등록을 하였고 2015년에 파산을 합니다. 그 상표의 권리를 Johannes Miething이란 활제작가가 인수를 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귀욤 공방 출신으로 2001년 미텐발트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경력의 제작자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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